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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48

한국의 사찰음식 한국의 사찰음식  우리나라의 사찰음식은 17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면서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 불교를 전래해 준 스님들은 계율에 입각한 수행자들의 생활을 가장 먼저 이해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가 공인을 받은 시기는 삼국시대인데, 그때의 자료를 보면 불교가 국가의 공인을 받으면서 백제와 신라에서는 불교의 계율에 입각하여 나라를 통치하려 했던 시도를 찾을 수 있다. 신라의 경우 불교를 공인했던 법흥왕이 '살생을 금지하라'는 명령을 내렸었고, 백제의 법왕은 '살생을 금지하고, 민가에서 기르는 매를 놓아주도록 하고, 물고기를 잡는 기구를 불태우고 고기 잡는 것을 일체 금지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이처럼 삼국시대에는  왕실과 귀족들의 적극적 활동으로 채식과 불.. 2024. 10. 15.
사찰음식의 역사 초기불교 - 걸식  사찰음식이 부처님 당시부터 존재한 것은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에는 탁발을 해서 수행자들이 식사를 해결하였다. 탁발은 산스크리터어인 '핀타파타'를 뜻에 맞게 번역한 것으로 수행자들이 수행자의 식기인 발우를 들고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서 음식을 얻는 행위를 말한다.  즉 탁발이란 걸식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 출가 수행자는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고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였기에 음식은 오롯이 재가자의 보시로 얻을 수 있었다. 하루에 한 번 다 같이 마을에 들어가 기러기 떼처럼 줄을 지어 걸으며 재가자들이 공양하는 음식을 얻었다고 한다.  물론 이때 음식에 대한 선택권은 없었고, 아무 음식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침에 탁발을 하지 못하면 그날은 하루 종일 굶어야 했.. 2024. 10. 15.
사찰음식의 특징 사찰음식에는 불교의 계율과 전통에 따라 몇 가지 금계가 있고, 이 외에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사찰음식의 금계와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금계 - 육식과 오신채  사찰음식에서는 육식을 금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의 첫 번째 계율인 '살생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인데, 육식은 다른 생명을 살생하는 행위를 통해서 제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입능가경」의 '차식육품'에는 "세존이시여, 고기를 먹는 사람은 큰 자비의 종자를 끊는 것이니, 성도를 닦는 이는 마땅히 먹지 않아야겠습니다"라고 하는 구절이 나온다.  육식에 대한 금지는 다른 여러 경전에서 언급되고 있으며 이에 근거하여 대승불교권에서는 엄격히 지키고 있다.   오신채는 어떠한가? 오신채는 '다섯 가지의 매운 채소'라는 뜻으로 '오훈채'.. 2024. 10. 14.
사찰 음식의 정의 부처님은 "모든 중생은 먹는 것을 의지하여 생존하고, 먹지 않으면 죽는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증일아함경」 제4권 '호심품' 5경에 나오는데, 이외의 다른 경전에서도 이 같은 구절이 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의식주 중에서도 먹는 것과 관련한 '식'은 그야말로 생존과 직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음식은 사람이 먹고 마시는 일체의 것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음식은 고른 영양 섭취와 조화로운 맛을 지녔는데, 우리의 사찰 음식 역시 이러한 우리 음식의 전통을 잘 이어 왔다. 사찰음식의 정의  사찰음식을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다. 사전적으로는 '불교에서 허용하는 승려들의 음식'이라 하기도 하는데, 이는 사찰 음식을 너무 좁게 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2024.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