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음식문화는 시대별로 토착 종교와 외래 종교의 영향을 받았으나, 일본의 주 종교인 불교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즉 불교에서 육식을 금하는 계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6세기로 추정된다. 이후 일본에는 많은 사찰이 건립되고, 수행스님들에 의해 중국에서 전래된 조리법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요리가 개발되었는데 이것이 일본의 '정진요리'이다. 정진요리는 산사에서 수행 정진하는 스님들이 먹는 식사를 말하는데, 엄격한 식사 예법이 있어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 모두에게 수행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럼, 정진이라는 말은 어디서 유래되었을까? 전진은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 의 'Virya'를 한자로 표현한 것인데, 잡념을 버리고 일심으로 정신을 수양한다는 뜻이다. 즉,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것도 수행이라고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초기에는 정진음식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으나 1185년에서 1336년에 중국으로 유학 갔던 스님들이 본국으로 귀국하면서 지금과 같은 정진 요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특히 일본 조동종의 중조인 도겐 선사가 중국에 유학을 가서 중국선사의 식사법과 마음가짐을 배운 뒤 여기에 자신의 가르침을 덧붙여 저술한 책이 있는데, 바로 「전좌교훈」이다.
도겐 선사가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서도 엄한 수행을 가르친 데서 정진요리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밥 먹는 일도 수행이니 마음을 다해 재료를 요리하고 그 본래의 맛을 제대로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12세기에서 14세기 중반에는 곡물과 채소로 만든 요리가 발달하였고, 16세기말에는 차 문화가 발달하고 음식의 양이 적어지면서 계절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카이세키 요리가 정진요리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요리 문화는 대개 관서요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관서 지방 사찰의 정진요리가 그 중앙에 있었기에 , 현재 일본 요리의 기본 원형이 정진요리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유서 깊은 사찰에서는 절마다 특색 있는 정진요리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상국사의 경우는 그 식단이 600년 동안 거의 변함이 없다고 한다. 이외에 일본의 지은사, 영감사, 대덕사, 교토의 돈게인 승원 등이 정진요리로 유명하다. 최근에 일본에서도 자국의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이에 관한 서적이나, 온라인 서비스 등이 활성화되면서 정진요리 보급이 확대되고 있다.
정진요리(젠고항)
정진요리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진요리는 유정(동물)을 피하고 무정(식물)인 채소류, 곡류, 두류, 해조류로만 조리한 것이다. 비자기름, 콩기름, 참기름, 호두 기름등 다양한 기름으로 튀겨낸 튀김요리가 많다.
또 채식 식단에서 부족하기 쉬운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기 위해 두부를 다양한 형태로 섭취하는 것도 특징이다. 구이용, 연두부, 된장국용 두부, 얼린 두부부터 유바, 건두부, 튀긴 두부, 발효시킨 두부(후류우) 등으로 가공하여 쓴다. 양념 중 하나인 깨도 단백질원이 되는데 특히 영평사에서는 매일 한 시간 정도 수행승이 심혈을 기울여 깨를 절구에 갈아 사용한다고 한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적은 양의 조미료를 사용하는데 특히 설탕을 사용하지 않고 식품 자체가 가진 단맛을 가열하거나 하는 조리법을 통해 이끌어 내는 방법을 택한다. 예를 들어 야채는 불을 사용하면 단맛이 배어 나오기 때문에 그 맛을 살리기 위해 백설탕은 사용하지 않는다. 단맛은 거의 일본의 조미료인 미림에 의한 것으로 어쩌다 벌꿀이나 흑설탕을 더하는 경우도 있다. 마찬가지로 소금이나 간장, 된장도 재료의 맛과 풍미를 해치지 않기 위해 삼가는 것이 기본적인 태도다.
또한 우리나라 사찰음식의 정신 중 하나인 '전체식'과 마찬 가지로 '일물 전체'의 정신으로 식품 재료를 버리거나 남기는 부분 없이 소중히 여기며 다 사용한다. 무를 예로 들면 무의 뿌리 부분은 생으로 먹거나 여러 가지 조리법으로 조리하여 섭취하고, 껍질은 볶거나 말려서 무말랭이로 만들고, 잎은 데쳐서 채반으로 만든다. 또 남은 부분은 식감을 달리해서 다시 사용하는데, 끓이거나 삶은 음식을 다시 튀겨서 버리지 않고 끝까지 다 섭취한다.
국물요리를 위한 기본 재료는 우리나라 사찰요리와 동일하게 다시마와 표고버섯이 쓰인다. 여기에 무말랭이를 추가하기도 하고 볶은 대두콩을 넣기도 하는데 볶은 콩을 넣으면 단맛이 있는 맛있는 국물이 나온다고 한다. 이외에도 야채 찌꺼기를 햇빛에 잘 말려서 맛을 응축시킨 뒤에 국물의 재료로 사용하여 풍미를 더하기도 한다. 정진요리의 기본재료는 두부, 콩제품, 곤약, 참깨 그리고 요리에 걸쭉함을 주는 칡가루 등이 있다.
카이세키 요리
카이세키 요리는 현재 일본 음식 문화의 한 주류로 확립되었다. 본래 이 카이세키 요리는 불교의 선종 사상의 영향을 받아 발전된 음식 문화이다. 카이세키요리는 다도에서 차를 내어 놓기 전에 손님에게 내놓는 간단한 식사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잠시 배고픔과 추위를 잊을 정도로 가벼운 식사를 말한다. 또한 매우 엄격한 규칙에 따라 형성된 요리 체계로 450여 년을 이어왔다.
카이세키라는 말은 아침과 점심만 식사를 한다는 계율에 따라 공복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품에 따뜻한 돌을 품었다'라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바로 이 온석처럼 속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배고픔을 견뎌내게 도와주는 간단한 식사를 말하며, 차를 마시기 전에 공복감을 참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카이세키 요리는 화려함을 지양하고 계절의 순리에 따르는 것을 매우 중시하며, 제철재료를 연하고 순한 맛으로 조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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