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은 놀랄 '경(驚)'자에 겨울잠 자는 벌레 '칩(蟄)'자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이렇듯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겨울잠 자던 동물이 놀라는 날인데, 왜 놀라냐 하면 봄이 왔기 때문입니다.
꿀주말을 보낸 뒤 월요일 아침에 울리는 알람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나는 우리네 인간과 비슷한가 봅니다.
옛날 사람들은 동물들이 천둥소리에 놀라서 잠에서 깬다고 생각했답니다. 실제로 경칩 무렵에 기상의 변화로 천둥이 칠 때가 많다고 하네요. 천둥소리에 깨든 따뜻한 봄날씨에 깨든 어쨌든 겨울잠은 이제 끝입니다.
겨울잠 자던 개구리나 도롱뇽도 잠에서 깨서 경칩즈음에 알을 낳는데, 이 알을 건져 먹으면 몸에 좋다고 여겨서 건져 먹기도 했답니다. 어쨌든 경칩 무렵에는 물가를 지나갈 때 유심히 살펴보면 개구리 알을 만날 수도 있겠네요.
그럼 동물들은 잠에서 깨어나고, 사람들은 경칩에 뭘 할까요?
단풍나무나 단풍나뭇과에 속하는 고로쇠나무를 베어서 그 수액을 마셨어요. 고로쇠 물을 마시면 여름에 더위도 안 타고, 위장과 뼈도 튼튼해진다고 생각해서 경칩이 되면 요즘에도 지리산 주변에 고로쇠 물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고 합니다.
또 경칩에 흙으로 일을 하면 일 년 내내 사고나 병이 안 생긴다고 믿어서 경칩이 되면 흙에 벽을 바르거나 흙담을 쌓기도 했어요. 특히 경칩에 흙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라도 발랐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경칩 풍속 중 가장 재밌다고 생각되는 것은 바로 '은행나무 씨앗으로 사랑고백하기'입니다.
양력으로 2월 14일은 사랑을 고백하는 '밸런타인 데이'잖아요.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시기인 2월 19일 전후에 은행나무 씨앗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풍속이 있었답니다. 흥미롭지 않나요? '조선판 밸런타인데이'라니!
조선시대에 세조의 명령으로 강희맹이라는 사람이 1450년대에 편찬한 농서인 「사시찬요」에는 이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
사랑의 징표가 은행나무 씨앗인 이유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서로 떨어져 열매를 맺는 은행나무처럼 순결하고 애틋한 사랑을 기원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은행나무 씨앗은 겉껍질이 단단하지만 일단 한번 싹을 틔우면 나무의 수명이 천년에 이르기에 영원한 사람을 꿈꿨기 때문이기도 해요.
결혼한 부부는 서로 마주 앉아서 남편은 수은행(은행 껍질이 세모난 것)을, 아내는 암은행(은행 껍질이 둥근 것)을 먹었고, 혼인하지 않은 남녀는 은행으로 고백을 하거나 나눠 먹으면서 마을에 있는 은행나무를 돌았다 하니 신기하고 흥미롭습니다.
은행나무 열매는 눈에 보이면 볶아 먹을 생각만 했지 이렇게 사랑고백으로 쓰일 줄은 몰랐습니다. 가을에 가로수 길에서 종종 만나는 그 고약한 냄새가 안 나면 재미있고 의미 있는 풍속인 것 같아요.
경칩 때 행하던 또 다른 풍습은 조선시대에 임금님이 선농단(지금의 제기동에 있음)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이 제사는 중국의 고대 전설에 나오는 농업의 신 '신농씨'와 곡신의 신 '후직 씨'를 기리는 제사였는데, 행사를 마치고 나면 소의 머리나 내장, 뼈다귀 같은 걸 푹 삶아 만든 국에 밥을 말아먹는 '설렁탕'을 먹었다 합니다.
우수를 지나면서 약간 따뜻해졌던 날씨가 경칩이 되면서 다시 추워진다는 '우수에 풀렸던 대동강이 경칩에 다시 붙는다'라는 속담도 있고, 큰 시련을 극복한 사람은 작은 시련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으로 '소대한에 얼어 죽지 않는 놈이 우수 경칩에 얼어 죽을까?'라고 하는 말도 있어요. 입을 다물고 있던 사람이 말문을 열 때는 경칩에 벌레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하는 것을 비유해서 '경칩 지난 게로 군'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경칩이 되면 저도 잠에서 깬 동물들처럼 부지런히 봄날을 준비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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